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이 시간에 우리 모두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역사하여 주옵소서. 나의 모든 한계와 틀을 깨고 세계보고만 할 수밖에 없는 근본 망대가 서는 시간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은 다섯 번째 주제로 이방 선교를 위한 그릇 준비입니다. 우리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정 10장 28절 말씀인데요. 우리 다 같이 한 목소리로 합동하겠습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가야 되는 그런 상황에서 이 뭐랄까요 약간 석연치 않은 모습을 봐요.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만드는 것이 위법이다 라는 것이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게 환상 가운데 나타나서 지시하시니까 나는 간다 라고 말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처음부터 명령하신 이방선교회의 그 패러다임이 아직 깊숙이 들어온 게 아니에요. 아직 유대인으로서 복음을 자신은 깨닫고 있는 거죠. 그래서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의 그 틀을 확 깨뜨리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오늘 그 이방 성교를 위한 그릇을 갱신시키는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내용이 많기 때문에 반복되는 내용들은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장면은 사도행정 9장 32절, 43절에 계속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초대교회는 성령의 내주, 인도, 역사 이게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고넬료 선교 현장까지 왔어요 여기서 전도자가 연구해보라고 하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성령 내주 인도 역사가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한번 확인해봐라 특별히 여러분의 개교회에서 이 다락방 전도운동의 역사가 어떻게 계속되고 있는지 확인해봐라. 그 말은 다락방 맺게 치교회 맺게 그거를 세하리라는 말이 아니에요? 정말 성령의 내주, 성령의 인도, 성령의 충만을 누리고 있는 그 영적 흐름이 우리 교회에 있는가 확인해보라는 거죠.
초대교회에 나타난 역사의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야말로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 그리스도가 부활하셨음을 증거했습니다.
부활했다는 것은 죽음을 이겼다는 거죠. 따라서 복음을 가로막을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역사 앞에 모든 장애물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지금도 주님이 살아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셨다는 것은 지금 바로 주님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번째로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주님을 이 초대교회의 전도자들은 계속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체험했던 성령 충만 속에 시작된 그 말씀 운동이 계속 전개가 되었어요. 그래서 성령 충만 속에서 초대교회 현장에 일어났던 건 말씀 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운동을 피워나갈 수 있는 제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8년 동안 중풍병자로 고생하고 있는 애니아가 치유받는 사건이 9장 34절 35절에 일어나고요. 그리고 36절부터는 이미 죽은 이 여제자 다비다가 살아나던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기에도 성령 충만 받은 이 베드로가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을 때 결국 그 부활의 능력 가운데 치유되고 그리고 부활하는 역사이렇죠.
두 번째 장면은 10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서론의 전도자가 이렇게 길게 서술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16절에서 20절 1절에 나타난 주님의 즉 세계보고마 그 언약은 성취가 되었고 사도행정 1장 8절의 마지막 약속도 성취가 되었으며 지금도 성취되고 있고 앞으로도 성취되어질 것이다. 누가 이 축복을 누릴 수 있는가 우리에게 지금 질문하십니다.
몇 가지 사실을 알고 체질화할 때 주님의 역사는 계속되고 열매도 계속 일어난다. 여기서 우리가 경계해야 될 잘못된 전도법을 생각해야겠습니다. 방법을 앞세우는 전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언약 잡고 기도하는 이 본질적인 것 빼고 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되더라 라는 방법론은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지역에 따라 대상에 따라 시간표에 따라 다릅니다. 심지어 같은 대상자라도 시간표에 따라 또 다르죠. 그래서 회계라든 어떤 방법론을 우리는 내세우지 않습니다. 전도자의 메시지가 굉장히 사실적인데 어떤 면에서는 구체적이지 않을 때도 있어요.
왜냐하면 생생한 살아있는 성령의 그 민감한 인도와 역사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능력을 앞세워 전도하는 것은 잘못된 전도법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이 사마리아 성의 시몬이라는 그런 거짓 마술을 행하는 자가 있었어요. 심지어 돈을 주고 성령을 받고 안수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그런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인본주의 전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아나니아 사피라가 성령을 속이고 사실은 돈을 감췄죠 우리 전도는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겁니다.
아나니아 사필아가 바나바가 헌신하는 것 보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혔어요. 우리는 오직의 전도운동, 절대적인 전도운동을 해야 됩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누군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그런 인본주의 전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전도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13절에 오순절날에 다같이 한 곳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138 언약을 잡고 오로지 기도하는 중에 다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복음이 확산될 수 있는 만남도 다 준비하셨어요.
열다섯 나라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 마가 다락방 현장의 전도자를 만났습니다. 즉 하나님 신 언약 찾고 기도하는 것.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만남이 일어난다는 원리죠. 우리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지향하는 게 아니라 근본적인 원리를 지향해야 됩니다.
그랬더니 사도행전 2장 41절부터 47절을 보면 주께서 제자들을 더했다라고 해요. 계속 말씀의 인도 받고 또 기도하고 반복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나 성전에서나 일관되게 이 영적인 방대를 세워가요. 그랬더니 날마다 구원 받는 자를 하나님이 더하셨다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는 사도행전 14장입니다. 3장 1절에서 10절에 안진뱅이가 일어나는 사건에서도 베드로의 어떤 능력, 카리스마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믿고 확신하고 있는 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권세를 사용했을 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평상시에 뭘 복상하고 있고? 무엇으로 확신하고 있느냐가 전달된다는 것이죠. 평상시 나의 영적 상태가 우리 전도운동의 망대가 되어야 합니다.
네 번째는 사도행전 8장 4절에서 8절에 이 사마리아에게 복음이 전해집니다. 복음의 말씀 그리스도가 전파되었다. 다섯 번째는 사도행전 17장에 바울이 회당을 들어갈 때 자기의 관례대로 캠프를 합니다. 이거는 어떤 인본주의적인 방법론이 아니라 하나님 주신 언약 잡고 정시로 계속 기도하는 것이 바울의 관례였습니다.
그리고 현장에 그리스도가 왜 필요한지 그 당위성을 증가하는 것이 그의 관례였습니다. 그리고 새해 안식일이라는 기한을 딱! 딱 정해놓고 집중을 한 것이 그의 관례였습니다. 그리소를 아는 자는 모든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 바울 같은 경우는요.
이 골롯에서 1장, 2장에 보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소 이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호가 있는데 이 복음을 위해 내가 고난받는 것도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복음의 절대 가치를 발견하고 아는 자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그리스도에 대해서 베드로가 올바른 고백을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사실 비본질적인 것들을 보고합니다. 그래서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영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지고요.
그리고 사울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그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안진뱅이에게 선포했던 것처럼 이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바르게 알고 사용하는 자가 참 전도자가 됩니다. 스테반이 이 순교하는 현장에서 그리스도 복음의 생명과 절대 가치를 바르게 알고 그의 삶을 그대로 산 제물로 드렸습니다.
결국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어떻게 믿고 확신하느냐가 전부인 겁니다. 하나님이 게시하신 대로 그리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누리고 증거한 대로 우리도 확신하고 누리는 복음이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고 누리는 자에게 드디어 주님이 역사하기 시작하십니다.
우리가 전도하려고 하고 선교하려고 애를 쓰지만, 정말 초대교회처럼 되어지는 전도선교회 문이 열리는 것을 두고 우리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늘 가이사라에 있는 고넬료, 즉 이방인에게 제대로 된 이 복음이 처음으로 증거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것은 사도행전 1장 8절의 성취였어요. 그리고 충성된 자를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주의 천사를 보내서 주의 뜻을 친히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정시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응답하셨고요. 베드로가 이 전도 선교 현장의 쓰임을 봤는데 시몬의 집 즉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면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었어요 사실 이 무두장이라는 직업 자체는 유대인들이 볼 때는 가장 깊이 하는 직업 중에 하나입니다 구약의 율법에 근거하면 죽은 짐승을 만지는 것 자체가 부정한 행위예요. 심지어 무두장이와 결혼한 여성은 자유롭게 이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어요. 그런 천한 직업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전도자 베드로를 돕는 이 일에 함께 쓰임받는 축복을 이뤘습니다. 그만큼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 편에 볼 때는 중요한 것이죠.
비록 천한 직업이었지만 이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일에 쓰임받은 그의 집이었고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의 기준은 어떤 직업적 귀천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르게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죠. 그래서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절대주권적 사역입니다. 결국 구원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섭리하고 다르스리시죠. 그러니까 감히 지구는 전도자를 위해서 돈다 라고까지 우리는 전도자가 말씀하셨는데 저희들도 확신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이 구원사의 구속사 성취를 위해서 전도자 베드로도 부르시고 또 시몬의 집도 예비하시고 고넬료 같은 제자도 하나님께서 준비하셨습니다. 세 번째 장면은 사도행전 10장 9절에서 16절인데요. 하나님은 누구에게 영혼을 맡기시는가? 서론에 보면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길을 여십니다. 진실로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전도의 문을 여십니다.
진실로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신기한 힘을 주십니다. 이렇게 서문에서 말씀합니다. 이제 이어서 강조하는 포인트는 진실로 믿음으로 기도하느냐를 묻고 있습니다. 믿음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아무리 많은 메시지를 듣고 정리해도 안 믿으면 소용이 없죠.
아무리 포럼을 잘하고 간증을 잘해도 실제 그 언양을 내가 안 믿는 것이면 상관이 없는 것 하나님과. 사실 우리 수업, 예배, 훈련 모든 메시지는요 다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될 것들이에요. 여기 나만도 믿음으로 치료받습니다.
바디메오 혈루증 여인 백부장애종 38년 된 환자도 믿음으로 치료받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하나님이 분명 역사하셨고 앞으로 역사하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럼 사실 예수님이 마지막까지 강조하신 세계복음화 언약을 정말 믿고 기다리고 누려야 돼요. 특별히 하나님과 그 능력을 지금 당장 체험하는 길 만나는 길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전도 선교의 사역이 진행됨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성령이 어떤 협력 사역을 하시는지를 시사해 주는 거죠. 전도자가 표현하신 그대로를 제가 적어놨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성령에 감화받은 자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성령의 내주를 누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정확하게 알고 누리는 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계속 누리는 것이 성령의 능력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도해야 될 이유가 나오는 거예요 결국 기도를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누릴 수 있고 성령의 충만함을 이 능력을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누구를 향해서 움직이십니까?
바로 전도자로 부른받은 베드로와 같이 구원하는 그런 심부름을 하는 전도자에게 역사하시고 고넬료와 같이 구원받을 자로 예비는 자에게 하나님의 시간표를 움직이십니다.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과 구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이 사건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된다 라고 말씀하세요. 그 범위는 온 천하와 만민이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2, 3, 7나라 5천 종족 복음화해야 될 현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은 이 구원의 복음을 전할 전도자를 찾으시고 여전히 구원 얻기로 작정된 자를 예비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전도 선교의 역사를 이뤄나가십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시간표에 방향을 맞춰 우리가 언약 잡고 기도한다면 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이루실 거라는 거죠. 이런 엄청난 구원사역을 하나님이 언제 성취하시고 준비하실까요?
성경에 여러 증거 구절들이 있습니다. 공통점은 뭐냐면 그리스도를 가진 자에게 복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리소를 가진 자가 시간을 정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그리소를 가진 자가 장소를 정하여 기도할 때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했습니다.
네 번째는 그리스도를 가진 자들이 합심하여서 한 기도 제목으로 기도할 때 이 일을 이루신다 했습니다. 특별히 골로세서 4장 3절에는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빔을 말하게 해달라 라고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 받을 때도 한 마음으로 모인 그곳에 역사가 일어났고 전도할 문도 같은 기도 제목을 잡고 구하는 그 현장에 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는 올바른 복음 깨닫고 누리고 기도하는 자를 통해 세계보고막 계속 진행되는 당연한 얘기를 했어요. 오늘 주제의 하이라이트는 지금부터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들과 교회가 더디게 깨달았다는 거예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도행전 1장 8절과 마태복음 28장, 26절, 20절 이 세계복음와 언약은 정확히 성취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나라와 개인은 능력과 기적과 응답, 축복 등 하나님의 각종 좋은 것을 체험합니다. 이 언약 성취의 여정 앞에 바리세 사상, 헬라, 문학, 로마 정권, 독재 정권, 각종 사상도 전부 다 무너졌습니다. 즉 복음은 근본적인 확장성이기 때문에 그 무엇도 가로막을 길이 없다는 거죠.
실제로 지금 고넬리오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보면 사도행전 1장 8절이 계속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15나라에서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였어요. 또 박해를 통해서 흩어지는 중에 빌립을 통해 사마리아의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또 주의 사자의 인도 속에 빌립이 에디오피아 4시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의 이끌림에 의해서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어요. 이런 모든 성취의 과정은 예수님이 명령하셨던 그 약속의 성취구나 라고 인식을 했었어야 돼요.
항상 세계보고만은 하나님이 약속한 것입니다. 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시는구나 하는 게 우리 전도자들이 가셔야 되는 관점입니다.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오늘 하나님은 고넬료를 예비하셨어요.
로마 보고마의 시초였다라고 전도자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는 로마 시민권자로서 권력자였고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있는 이 가이사라라는 지방은요, 지중해 항구 도시였죠. 또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를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웅장한 건물들을 건축해 놓은 발전된 도시였습니다. 또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그런 로마 총독의 관저가 있었던 지역이고요.
로마 직속 군대가 주둔을 하고 있었고 또 많은 이방인들이 이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또 로마 제국은요 사실은 이 군대를 힘입어서 제국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확장해가고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사회에서 이 군인은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어요. 이 이달리아 부대라는 것은 480명에서 혹은 600명 정도 규모의 보병대였다고 합니다. 천부장 한 명이 총 지휘관으로 진도 지휘했고 여기에 여섯 명의 백부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었어요. 그 중에 한 명이 고넬루오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보고마의 아주 중요한 문이 될 수 있는 예비된 사람인 거죠. 가이사라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한번 보시길 바랍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고백을 했던 가이사라 필립보와 다른 지역이에요. 사마리아에서도 좀 북쪽에 그 다음에 해안가에 있는 그런 항구도시였습니다.
이 예언을 즉 세계보고말을 성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데 오늘 고넬료와 베드로가 만나는데 환상으로까지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늘의 사자를 파송하시고요. 고넬료와 베드로 이런 만남이 일어나도록 경건한 자들을 이렇게 예비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뒷 장면에 나오겠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이 이방 선교회에 대해서 아주 무뎌 있었습니다. 오히려 신생 안디옥 교회는요. 빠릿빠릿하게 선교회에 끼어 있었어요. 심지어 베드로마저도요.
정확하게 깨닫고 고네루를 만나러 간 건 아니었어요. 하늘에서. 뭐가 딱 내려오니까 하나님 그걸 집어 먹어라 라고 명령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는 부정한 거 절대로 먹은 적이 없다.
먹을 수 없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깨끗하게 했다고 했는데 이 부정한 거 먹을 수 없다고 세 번이나 실랑이를 해요. 10장 17절에 보면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했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직 못 깨달았고 있어요.
여기 보면 의아해하다 라는 디아포레오라는 동사는요. 일어난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를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20절에는요.
이 고넬료가 보낸 종들을 따라서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세계 선교를 이루기 위해서 친절하게 베드로프를 계속 떠밀고 계십니다. 심지어 21절에는요.
고넬리오의 종들을 보고 난 다음에 무슨 일로 왔느냐 이렇게 말해요. 사실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 15나라 출신의 디아스포라가 왔을 때는 아 이게 세계보고마 언약성추의 현장이다 사실 그렇게 느렸겠죠. 근데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리 힘이 없었을 거예요. 아직 직접 이방인을 통해서 이 복음이 전달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개념이 없었던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님은 세계복음 언약을 계속 얘기했고 구약 때부터도 얘기했고 성취하고 계시는데 베드로처럼 이 예루살렘 교회는 더디게 깨닫습니다. 사실 열방을 향한 이 축복의 계획은 아브라함 부를 때부터 하나님이 막속한 거예요. 이스라엘의 선민 사상, 이방인에 대해서 구분 짓고자 하는 사상, 그리고 요나가 나는 절대로 저기 갈 수 없다라는 이런 사건들을 통해서 얼마만큼 복음의 선교에 걸림돌이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방인 선교사로서 이미 준비된 바울과 안디옥 교회는요, 정확하게 깨달았어요. 하지만 이방인 선교와 안디옥 교회는 정확하게 이해했죠.
베드로도 더디게 깨닫는 중에 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국경을 넘습니다. 우리 주위에 전도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쉬지 않고 구원사역을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기도 응답이 계속 되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주께서 지금도 그 응답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이 이 고넬료를 굉장히 갈급한 심령으로 예비하셨어요. 사실 사도행전 1장 8절이 성취되는 이 방문이 열리는 순간입니다. 심지어 10장 24절에 고넬료가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다 모아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도자 베드로가 오니까요. 나가서 절을 할 정도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정도로 그리고 하나님 주시는 말씀을 사모하는 자가 있었다는 거죠. 영적으로 굉장히 갈급한 상태이셨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는 백부장으로서 계속 출세, 앞으로 진급 이런 것에 대한 육신적인 그런 고민들이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세상 나라의 어떤 가치관, 그런 세계관으로 사는 데 만족이 없잖아요. 그런데 유대인들이 믿는다라고 하는 그 하나님이라는 분이 뭔가 자신이 볼 때는요, 여기에 소망이 있다라고 아마 그는 생각했을 겁니다. 저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더 자세히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거예요.
베드로를 통해서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정확하게 듣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전도자가 말씀하시는 건 전도는 어려운 게 아니다. 왜냐? 하나님이 갈급한 자를 예비하시기 때문에.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부담스러운 마음을 준비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가 되는데요. 베드로가 환상 중에 떠밀려서 오기는 왔지만 직접 현장에서 이방인이 복음 받는 걸 보고 깨닫게 돼요.
10장 35절을 보면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다 받은 신주를 깨달았다 라고 말합니다. 이제 깨달았어요. 34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라고 해서 이전에는 이방인, 유대인 이런 걸 구분 지었다는 거죠. 이런 유대인들의 예트를 깨뜨리고 아 각 나라 중에 구원받을 자가 있구나 이렇게 본 겁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긴 한데 36제를 보면 마녀의 주대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야마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 이방인들도 다스리시고 평화의 복음으로 구원 받기로 작정되어 있구나라는 것이 이 마녀의 주라는 표현 안에 들어가 있는 거죠. 즉 이 복음이 이 3, 7나라의 복음이구나. 5천 종족을 위한 복음이구나.
그걸 지금 고백하는 거예요. 우리가 한국에서 비록 다락방 전도운동이 촉발되어져서 이게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이라는 틀에 갇혀있으면 또 안되죠 마녀의 주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결국 성령이 역사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자를 해방시키십니다. 그러니까 초대교회에 지금까지 있었던 전도운동의 역사가 이방인 현장에 그대로 재현됩니다. 그리고 똑같이 부활의 주님을 또 증거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지금 역사하고 계심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로 죄를 사시는 분임을 증언하고요. 그럼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한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동일한 성령의 충만함이 임했습니다.
보넬료와 그 집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부어졌어요. 이렇게 이방인들에게 집단적으로 성령의 충만함이 처음 임한 거예요. 이건 사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인 거죠.
그리고 마가의 자락방에도 방언이 일어났던 것처럼 이 이방인들도 지금 방언을 하게 되었어요. 바벨탑의 저주가 무너지고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성령은 지금도 이 자리에 교회 선교지에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을 우리는 고백합니다 이렇게 더디게 깨닫는 베드로가 현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우와! 이제 깨닫게 되었죠 하지만 이 현장을 보지 못한 예루살렘 교회의 반응을 한번 볼까요? 예루살렘 교회의 숨겨진 문제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절에 보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구나 하는 보고를 들어요. 그런데 11장 2절에 보면 할래자들이 비난했다고 했습니다. 그 비난 내용이 뭐냐 3절에 무할래자의 집에 베드로가 들어가서 같이 식사했다는 걸 댓글 걸었어요. 아니 사도행전 1장 8절이 성취된 응답이구나 라고 같이 감사하고 감격했어야 되는데 아니 이방인이 이 구원의 복음을 받고 돌아왔다는 것에 대해서 기뻐해야 되는데 이 유대적인 사상이 남아있었습니다.
바리세인 종교의식이 남아있습니다. 할래자 무할래자를 구분짓는 옛 유대교의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실 십자가 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고백하셨잖아요. 그러면서 모든 막힌담을 허물었다고 했거든요.
아직 선민과 이방인을 구분지는 의식이 남아 있었어요. 사실은 옛 각인 뿌리 재질이 남아 있다는 거예요. 틀린 막내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락방 전도운동이 처음에 원색보금 선포된 이후 계속 각인뿌리체질 치유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기는 보면 옛날 것이 기존의 것이 내게 박혀있는 게 남아있는 문제점을 볼 수 있어요. 그 다음은 보면 예수님이 새롭게 주신 언약이 있는데 그걸 잘 흡수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사실은 모든 족속, 열방, 민족, 제자 삼으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정 1장 8절에도 땅 끝까지 그랬는데 이걸 깊이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장 소원하시는 부분 전도선교에 소홀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지금 사도행전 10장 11장쯤 되면요. 예루살렘 온 유대 막 보금이 전파되어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돌아왔단 말이에요.
사도행전 10장 11장에서 유대 막이 돌아왔다는 거예요. 고기! 사실은 충분히 복음화되지 않은 사람들도 교회의 일원이 또 되어 있는 겁니다. 결국 최근에 우리 메시지에서 강조하시는 바 사단의 망대, 사탄의 요새, 사단의 왕국을 완전 무너뜨려야 됩니다. 그러면서 복음의 망대, 복음의 여정, 복음의 이정표를 세워야 되는데 이걸 소홀히 했단 말이에요.
마가다락방의 그 성령에 충만한 역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속되는 부분에서는 점점 약화가 된 것 같습니다 이게 예루살렘 교회의 한계였어요 결국 복음이 희미해지면요 언약이 희미해지면 종교화됩니다. 종교는 실패하고 망합니다. 결국은요 오직 그리스라는 이 복음의 유일성이 희미해져 버리면 점점점 교권화되고 제도화되고 점점점 약해지죠.
복음은 반드시 구원과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요 사탄에게서 해방되는 길이요 죄와 지옥에서 해방되는 길입니다. 따라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방인들이 이 사단의 열두 가지 함정올무틀에 갇혀있기 때문에 이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임을 깨달은 안디옥교회 바울을 하나님이 쓰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유대의 적인 성량이 강화되었던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 만나는 길, 살아내서 해방되는 길, 죄와 지옥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이 그리스도의 복음이요.
점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던 거예요. 그 복음이 저 불신자들, 이방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에 있어서 담을 못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결국은 전도자의 표현으로는 조용히 초대가 안디옥 교회로 옮겨지게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이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라고 인식하고 전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 선교할 수 있는 일꾼들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환란 가운데 흩어지는 중에 이 교회는 세워졌죠.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고 주와 함께 하시고 큰 무리의 제자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울이 1년 동안 함께 바나바와 동력해서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비로소 그리스도인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걸 미리 내다보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예루살렘 교회나 베드로나 억지로 또 밀려서 뭔가 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는 성교정 관점에서 미리 내가 보고 갖고 누리고 정복하고 성취했어요. 결국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는 빛의 경제 응답까지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합심기도 철야기도의 능력입니다. 이 초대교회 전도자들은 확실한 복음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고난 앞에 두려움이 없었고요.
지속적으로 기도 속에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런 중에 고넬료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졌어요. 그런데 12장 1절을 보면 헤롯 왕이 이 사도들 전도자들을 핍박합니다. 복음이 확산되는 중에 사단이 이 복음을 가로막기 위해 발악하는 것은 당연한 거죠.
베드로도 죽기 직전에 갔습니다. 그런 중에 온 교회가 모여서 합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감옥에서 빼내오시죠.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이 기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복음을 핍박하고 괄호 막는 자가 있어도 교회가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는 힘이 크다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직 순교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베드로를 하나님 보호하시고 이후로 말씀은 더 흥황하여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더해집니다. 결론적으로 전도자의 묵상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가이사라 빌리포에서 로마까지 지금 우리 메시지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이 3,7,5천 종족까지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시죠 3단체 후유증까지 대비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내가 더디게 깨닫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주호가 같은 시대적 메시지를 받고 있는데 우리는 더디게 깨닫고 있어요. 그걸 사단의 막내, 사단의 요새, 사단의 왕국이다라고 표현하십니다. 내 생각, 내 계획 아니라는 거죠.
1960년, 70년대 미국에 히피 반문화 운동이 크게 일어났었습니다. 그때 마약 중독자, 프리섹스 선언자, 신비 종교, 오컬트, 뉴 에이지에 심취한, 사람 문화권에 노출된 히피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즉 히피 반문화, 그 세대의 후유증을 겪는 세대들에게 전도 선교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미국 류 목사님이 얘기하셨던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님이에요. 결국 복원받고 변화된 히피 청년들을 통해서 1200개 교회가 개척되고 3000명의 제자가 일어나서 세계 선교 운동이 일어나네요. 그 시대에 필요한 세 가지 뜻을 준비한 분이에요. 당시 어떤 회사는 기존 복음주의 기독교가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던 현장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접근 못하는 현장이에요.
앞으로 3단체 후유층에 저와 여러분은 접근할 수 있는 전도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2023년에 랩랭 대회 때 내년에는, 2024년에는 5천 종족이 제자들을 초청할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실제 올해 바누아트를 비롯한 섬나라에서 100명 이상의 렘넨트들이 왔습니다. 앞으로 세 가지들, TCK 하우스, 힐링 하우스, 이런 것들을 전도자가 미리 준비하라고 미션을 주고 계십니다.
우리가 베드로처럼 혹은 예루살렘 교회처럼 더디게 깨닫지 않길 소망합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바울처럼 미리 준비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안디옥 교회처럼 바울처럼 미리 언약 잡고 그릇을 준비하게 우리가 연약하여 부족하여 늘 더딕게 깨닫으나 하나님 은해주셔서 정말 성령 하나님이 우리에게 개시와 지혜의 영을 더하여 주셔서 전도자를 통해 선포되는 귀한 언약의 말씀을 사실적으로 믿고 깨닫고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